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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일기] 20040415 나는 비판받아 마땅한가 ?

입력일:2005-06-03 / 조회수:2315 / 추천수:98 / 작성자:한만용

나는 64년생이고 고향은 충청북도이다. 나는 의사이며 현재 미국에서 1년 연수 중이다. 미국에 살기전에는 서대문구에서 살았다. 미국에 체류중임에도 나는 오늘 치루어진 선거에 관심이 많다.

선거 결과를 인테넷을 통해 대충 알고있다. 내가 현재 한국에 있었다면 누구에게 투표를 하였을까 ? 예전 우리나라에서 살 때 서대문구갑이 나의 선거구 였는데 아직 이곳에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후보가 확실한 우세를 점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40대에 들어섰으니 나이로 치면 어느 당을 후원할 지 반반일 것 같고 충청북도이니 고향으로 치면 열린 우리당을 지지할 것 같고 가진자로 치부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한나라당을 후원할 것 같다.

내가 처음 신문을 보기 시작한 것은 6학년이나 중학교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는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다. 신문에는 지금보다 한문이 많이 섞여 있었고 한문을 아직 배우지 않았을 때라 카툰과 신문 소설을 읽었다. 신문 소설은 12살이었던 소년에게는 매우 자극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서 내가 소설을 읽을 때는 꼭 화장실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12세 소년이 신문의 카툰을 보는 것은 1970년대 말의 정치를 생각하면 매우 어려운 암호와 같은 내용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아버님에게 귀찮게 몇번이고 물은 기억이 난다.

1983년에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은 역시 암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당시 그것이 무었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무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 안에 진을 치고 있는 ‘잡새’라 불리는 사람들과 데모 열풍은 나의 곁을 지나갔지만 그 핵심을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다.

정치적 성향이 급격히 변한 것은 나의 친구의 영향이나 토론을 통해 얻은 것은 아니다. 우연히 보게된 광주민주화운동의 동영상과 ‘전태일씨 평전’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와 같은 종류의 몇 권의 책을 통해서 이다.

그리고 지금 조선일보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과 같이 나는 고향에 내려가면 아직도 조선일보를 보는 부모님에게 신경질을 냈다. 조선일보를 읽다보면 가슴이 탁탁 막히는 것을 느끼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그 즈음에 나오기 시작한 한겨레 신문은 나에게 매우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하고 있는 신문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므로 1990년대까지 나의 정치적인 성향은 조선일보에서 한겨레 신문으로 이동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는 중에 나는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87년대 민주화 열기가 한창일 때 당시 이한열씨의 죽음이 내가 다니던 대학에 몰아쳤다. 의대 기숙사에서 자고 있는데 시신을 전경들이 빼앗아 갈 것 같다는 방송에 달려나가 장례식장을 밤새 꼬박 지키고 있었다. 새벽이 올 즈음 정치가들이 나의 앞에 나타났다. 나는 처음으로 그때 김대중씨와 이철씨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왔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두 사람 뿐이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정치가란 그 정치가 개개인이 매우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또한 당시 나는 권위라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그때 나는 김대중씨에게서 묻어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았고 그 앞에 이철씨는 한명의 보조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기대한 것과 달리 현재 ‘계파’ 정치니 ‘보스’ 정치니 하는 모습을 언뜻 보게 된 것이다. 5분 정도 멀치감치 한 대학생이 그들 겉모습을 본 것만으로 새로운 무었을 느낀다는 것이 우습지만 나는 그 한 ‘카툰’과 같은 장면을 보고 그들이 하는 정치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1990년도에 나는 의사 자격증을 얻었고 1997년에는 전문의 자격증까지 받게 되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통령은 김대중씨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에게도 한번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 우리나라도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5년이 흘러서 나는 다시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 이회창씨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려고 하였다.

왜 5년 전에는 이회창씨를 선택하지 않고 5년이 지나 이회창씨를 선택하려고 하였을까 ?

이 즈음 나는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조중동’ 신문만을 보고 있었다. 한겨레신문은 너무 편향된 정보만을 나에게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 조선일보에 느끼던 분노를 지금 ‘조중동’을 ‘보수수구’세력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나는 예전에 느꼈는데 지금은 오히려 조선일보를 비롯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보게될 때 더 마음이 편하다.

왜 변했을까 ?

의사라는 가진자에 속한 직업때문인가 ?
나이가 나를 말해주고 있는가 ?
새로운 진실에 둔감하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자세 때문인가 ?

나는 왜 내가 변하였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틀린 것인가 한겨레 독자들이 틀린 것인가 ?

노무현 대통령이 된 후 한번은 나의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 할 기회를 갖게되었다. 두명의 친구들은 대학시절 나보다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뽑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이 된 이상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그를 지지해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우리의 정치적인 이야기는 그 이상 진전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받은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국내에서 ‘탄핵역풍’이 심하게 부는 것으로 보아서는 나의 현실 감각은 매우 무디고 아마 정치가였다면 정치 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이상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정치행위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 보여지는 것으로 탄핵을 발의한 것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행위가 정상적인 정치행위였다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우리나라에서는 위험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수구보수’세력이며 개혁의 걸림돌을 가진 사람이라고 치부될 것이다.

왜 나는 이런 위치에 떨어져 있는가 ? 내가 지금 학생이라면 열린 우리당을 지지할까 ?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읽으며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할까 ?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잘되길 기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좀더 잘사는 나라가 되고 과학이 발전하며 부가 좀더 공평하게 나뉘어 지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나라당에서 선거자금을 위해 얻은 정치자금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회창씨보다 더 깨끗하고 더 정직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럴 기회가 그에게 온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회를 노무현 대통령이 잘 잡아내느냐 아니면 이전 대통령처럼 실패하느냐는 그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 선거에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런 점에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가야 하듯이 우리나라에 새로운 일을 새롭게 등장한 대통령이 해결해야 한다.

이 태도로 보아 나는 ‘수구세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겨례신문을 읽는 독자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 판단 기준으로 나는 ‘우파’에 속하지만 한겨레 신문 독자는 ‘좌파’ 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파’가 ‘수구보수’ 세력이 아니듯이 ‘좌파’는 ‘빨갱이’가 아니다. 물론 ‘우파’ 중에는 극우세력으로 히틀러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좌파’ 중에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우파’ ‘좌파’ 개혁이 실패한다면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불안한 정치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민주 선거가 들어선 이후로 개혁은 ‘우파’의 몫도 아니고 ‘좌파’의 몫도 아니다.

민노당은 ‘극좌파’이며 자민련은 ‘극우파’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의 승리이다.

그러나 ‘좌파’의 성공은 좌파의 생산적인 결과에 쟁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좌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과 정치의 깨끗함이라는 쌍두마차를 잡아야 한다. ‘우파’가 김대중 정권에서 국회 과반수를 점령한 것은 ‘좌파’ 정권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다면 나는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에게서 공격을 받을 이유는 없어보인다. 나도 건강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사람이므로 조선일보를 읽고 중앙일보를 검색하고 동아일보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정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수구보수’ 세력을 못잡아서 안달일까 ?

나는 이것을 ‘집단 괴롭힘’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널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집단 괴롭힘’은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학교에서 우리 자녀들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분노를 한다. 이때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내용에 동의를 해야한다. 즉 남을 괴롭히는 것은 매우 비겁한 짓이며 해서는 안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의 성격이나 성향을 분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학교에 다니면 알겠지만 매우 얄미운 친구들이 있다. 한대 쥐어밖아주었으면 하는 친구가 있다. 그들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어리숙한 아이일 수도 있다. 어떤 아이는 너무 집중을 못해서 반 분위기를 흐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잘난체 하는 아이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귀찮은 존재와 같은 아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아이일지라도 그 아이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것에 동의를 해야 한다. 그 아이가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신경질적이고 되먹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를 괴롭히면 안된다. 그 아이를 심판할 사람은 같은 반의 친구아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에 동의를 해야 한다. 남을 괴롭히지 않아야 하는 것은 같이 사는 지혜를 발견해야 하는 유치원때부터 배워야 하는 지혜이다.

그 아이와 같이 놀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아이에게 시비걸거나 못되게 굴면 안된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서 집단으로 지속적으로 욕을 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

왜 안되는가는 확실하다. 그 아이는 아무런 잘못을 한게 없기 때문이다. 어떤 규칙을 어겼다면 그 아이를 벌 줄 사람은 선생님들이지 그를 친구들이 심판하여 형벌을 가하면 안되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학교에서만 일어나는가 !

지금 인터넷을 뒤져보라. 도대체 해대지 않아야 할 말들이 넘쳐나는 곳이 인터넷이다. 그리고 표적이 잡힌 사람이 있으면 집단으로 괴롭혀대는 곳이 인터넷이다. 이는 비 신사적인 행위임에도 그 집단 괴롭힘에 참여한 사람은 옳다고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방법으로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인터넷에서만 일어나는가 !

나는 탄핵심판에 찬성을 던지는 Minor 그룹에 속하지만 나의 의견을 가만히 앉아서 들을 정도의 참을성이 많은 Major 그룹이 없는 것 같다. 다수의견을 낸 사람들의 많은 수가 소수의견을 낸 자의 공격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괴롭힘을 막으려고 하는 사회적인 노력도 없는 것 같다. 다수그룹은 소수그룹을 공격하므로서 자신이 옳음을 확신시켜주고 싶어한다. 이런 현상은 1970년대에도 있어왔다. 그리고 21세기에 와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에도 그들은 직접 나서서 응징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하여도 응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법이요 선거이다.

사회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국가 발전에 커다란 해악이다. 대통령이 지금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한나라당은 10석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의견은 우리 사회를 다양하게 만드는 잡초와 같은 것이다. 그 의견 중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진실이 누구의 의견인지는 그 주장을 하는 사람도 모른다.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고 싶어하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사람이 일정한 틀안에서 주고받는 행위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왜 그리도 다른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가 !

자신이 해야 할일도 많이 있을텐데…

 
100자평 쓰기  이름: 입력일:2022-01-28 
 
작성자 : Yaja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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